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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보물창고/일반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feat. 대한민국 반공)

by 나은파파 2020. 10. 2.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feat. 대한민국 반공)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은 1987년 홍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당시 대한민국(전두환 정권)의 반공에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수지 김(김옥분)은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상경 후 버스안내원을 하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버스안내원의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이 있자 고민 끝에 양공주(기지촌)로 일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의 기생관광 매춘부를 하는등 윤락 여성으로의 삶을 시작합니다.

쉽게 돈을 벌기 시작한 그녀는 더 이상 땀흘려 일하는 직업은 갖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다음 행선지는 홍콩이었습니다. 홍콩에서도 역시 매춘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와 친정을 방문하는데, 이때 옆에 한 남자를 데려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윤태식입니다. 수지 김은 그를 결혼할 남자로 부모님께 소개하였는데, 그녀는 윤태식을 육사를 졸업한 대위라고 하였으나, 실제 그는 중졸이었습니다. 그 이후 둘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갔는데... 그 이후 수지 김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바로 싸늘한 주검이 된 것입니다. 둘이 돈(사업자금)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윤태식이 그녀를 폭행하여 죽인 것입니다.

 

수지 김을 살해한 후 당황한 윤태식은 월북을 위해 북한 대사관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중졸에 양아치 같은 그를 받아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북한 대사관에서 쫓겨난 그는 이번에는 미국 대사관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는 한국 대사관으로 연락해서 그를 인도해 버립니다.

 

한국 대사관에서 미국 대사관을 찾아간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의 와이프가 실종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제 갑자기 일본어를 쓰는 두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와이프와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자신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해서 밖에 나갔다가 왔는데, 3명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른 사람이 찾아와 당신 와이프가 사채를 빌려서 갚아야 하니 어느 공항으로 오라고 했고, 거기에 가보니 어떤 여성이 자신의 부인이 간첩임을 알려주며 부인을 보고 싶으면 같이 북한으로 귀순하자는 황당한 시나리오를 그 짧은 시간에 짜내서 말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기부는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 및 민주화 열기반공에 목말라 있던 차에 "미모의 간첩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니 쾌재를 부르며 반겼습니다. 바로 기자회견을 하고 언론에 기사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은 홍콩과 근접한 싱가폴이 아닌 태국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장춘 당시 싱가폴 대사가 자신은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혀서 급하게 태국으로 이동해서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어쩌면 사건의 내막을 이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장춘은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BBK 명함을 직접 전해줬다고 인터뷰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후 해당 사건은 한국의 안기부를 통해서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습니다. 전두환은 무척 화가나서 장세동 안기부장을 질책하였고 더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처리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장세동윤태식의 거짓 시나리오 대로 강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언론에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을 다시 뒤집는데 부담을 느낀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윤태식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진짜 제가 서울에 온 것 같습니다. 너무 무서워서요. 말을 못하겠어요.... 우선 가장 이번에 뼈저리게 느낀것은 사실은 그 반공 반공 했을때, 저는 반공의 뜻을 이해 못했어요. 이게 반공이라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 하는게 아닌것 같고, 제가 봤을 때..."

 

이를 통해 그는 미모의 간첩을 뿌리친 국가적 영웅이 되었고, 안기부에서는 사건을 그대로 덮기위해 철저하게 그를 교육·통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터집니다. 윤태식이 수지 김을 살해한 뒤, 시체를 그녀의 집 침대 밑에 숨겼는데, 이 시체가 부패해서 악취를 주변에 퍼뜨렸고, 옆집에서 이를 신고하여 홍콩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입니다. 홍콩 정부에서는 해당 살해 사건 조사를 위해 한국 정부로 윤태식의 신병 정보를 요청하였으나, 안기부에서는 이를 불허하였습니다. 이후 언론 통제도 당연히 실시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신동아의 이정훈 기자에 의해서 처음 세간에 알려지게 되고, 그 기사를 본 '그것이 알고싶다' PD 가 이를 방송으로 내보내면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건의 진상 파악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윤태식은 공소시료 3개월을 남긴 상태에서 구속됩니다. (살인죄 공소시효 15년)

 

다행히 윤태식은 처벌 받았으나, 피해자 유가족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연좌제로 세상의 비난을 받았고, 실제로 안기부로 연행되어 고문을 받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습니다. '간첩의 가족'이기 때문에 보안감찰이라는 명목으로 안기부의 감시가 일상화되었으며, 평범한 직장과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신분을 숨기고 가족간의 연락을 끊어야 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실어증을 얻어 1997년에 사망하였고, 나머지 형재자매들도 정신질환, 알콜중독 등을 통해 사망하거나 방황하였습니다.

 

당시 국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타지에서 결혼 3개월 만에 살해당한 한 여성간첩으로 둔갑시켰고, 그녀를 살해한 살인마를 국민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중요성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되는 계기임과 동시에 인터넷이 발달된 현재에 이와 유사한 상황은 있을 수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 엄혹한 시절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바람에서 해당 사건을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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